아마도 2005년이나 2006년 경이었던 것 같다. 제일 먼저 애자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계기는 다양한 애자일 방법론 중 하나인 익스트림 프로그래밍(XP, eXtreme Programming)을 통해서였다. XP를 통해서 지속적 통합(CI, Continuous Integration)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고, 나는 곧바로 회사에 굴러다니던 여분의 PC에 CruiseControl.NET을 설치하고 빌드 과정을 자동화했다. 그리고 신세계를 만났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XP에는 의사소통, 단순성, 피드백, 용기, 존중이라는 다섯 가지 가치가 있다. 이런 가치를 지키지 않는다면 당연히 XP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때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는 애자일 실천법들이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아왔던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했다. XP를 통해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함께 앉기, 정보 방열기, 짝 프로그래밍, 사용자 스토리, 점진/반복적 개발, 리팩토링, CI, TDD 같은 애자일 실천법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가락을 쳐다본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애자일 전문가들이 다양한 애자일 실천법을 만들어 전파하는 데 온 힘을 쏟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에게 “팀이라면 서로 투명하게 소통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모호해서 별로 도움이 안된다. “매일 아침에 15분씩 모여 서서 회의를 하세요.”가 훨씬 더 현실의 문제를 잘 해결해줄 수 있다.

XP와 M3.0

XP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매니지먼트 3.0도 그 구성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XP가 애자일 개발자를 위한 종합 선물 세트라면 매니지먼트 3.0은 애자일 관리자를 위한 종합 선물 세트다. 스크럼이나 칸반처럼 구조화된 프레임워크는 아니지만, XP와 매니지먼트 3.0에는 가장 중심에 몇 가지 핵심 가치와 원칙이 있고, 거기에 따르는 다양한 실천법들이 있다. 전체를 한꺼번에 적용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가장 적합해 보이고 눈에 띄는 실천법이 있다면 우선은 그것만 골라 시도해봐도 좋다. 그런 다음 그 시도를 하나씩 하나씩 늘려가면 된다.

M3.0의 실천법들

매니지먼트 3.0에는 애자일 관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매우 여러 가지 실천법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소통하는 커뮤니티가 있어서 지금도 끊임 없이 새로운 실천법이 매니지먼트 3.0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다양한 실천법들 중에서 내가 워크숍을 통해 소개하는 것들을 몇 가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델리게이션 포커 | Delegation Poker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를 했을 때 가장 반응이 좋은 매니지먼트 3.0 실천법이 바로 델리게이션 포커와 델리게이션 보드(Delegation Board)다. 관리자라면 누구나 ‘위임을 잘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그 누구도 어떻게 하면 위임을 잘 하는 것인지 왜 위임을 잘 해야 하는 것인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렇게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체계적으로 위임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무빙 모티베이터 | Moving Motivators

구성원 동기 부여는 관리자들에게 참 어려운 문제다. 나 자신은 언제 불타오르는지, 나와 함께 일하는 그 친구는 무엇에 몰입하게 되는지, 우리 조직은 기본적으로 어떤 동기 부여 속성을 갖추고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셀레브레이션 그리드 | Celebration Grid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유행어가 된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은 ‘모든 실패를 용인하는 것이 정말로 옳은가?’라는 의문일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학습하는 조직 문화와 연결해서 어떤 실패는 용인해서는 안되는지, 어떤 실패는 축하할 수 있는지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셀레브레이션 그리드는 무엇을 학습했는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한 시점에 활용하기 좋은 회고 도구다.

가치 스토리 | Value Stories

개인에게는 가치관이 있고, 집에는 가훈이 있고, 반에는 급훈이 있다. 그리고 회사에는 핵심 가치나 비전/미션이 있다. 팀에는 왜 그런 게 없을까? 당연히 단위 조직도 그들만의 핵심 가치를 지닐 수 있으며, 그 핵심 가치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가장 잘 전파되고 조직의 문화로 자리잡게 된다. 가치 스토리를 통해 조직 문화와 핵심 가치의 진정한 연결을 만들 수 있다.

팀 역량 매트릭스 | Team Competency Matrix

많은 기업이 구성원의 역량 향상에 힘을 쏟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HRD에서는 “개인 역량의 총합이 조직 전체의 역량이다”라고 가정하는 듯 보인다. 개인의 역량과 조직의 역량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조직의 성과는 개인이 아니라 개인 간의 연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조직에는 어떤 역량이 얼마나 필요한지, 현재의 상태는 어떠한지 돌아보는 팀 역량 매트릭스는 조직의 역량을 이해하는 좋은 도구다.

메들러 게임 | Meddlers Game

메들러 게임은 조직의 구조와 R&R을 고민해 볼 수 있는 굉장히 유연한 게임이자 도구다. 아기자기한 메들러 게임을 테이블 위에 펼쳐 놓고 어떻게 조직을 구성해야 애자일한 조직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전체 관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퍼스널 맵 | Personal Maps

나에 대해서는 동료들에게 얼마나 잘 설명할 수 있고, 나는 내 동료들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퍼스널 맵을 만들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은 팀을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데려가 줄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조직에서 평소에 잘 주어지지 않던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주면, 누구나 그 시간을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긴다.

아이덴티티 심볼 | Identity Symbols

유사 이래로 온 세상이 다양한 상징과 로고로 넘쳐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직관적으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을 만들어 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심볼로 티셔츠를 만들어 입는다면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해피니스 도어 | Happiness Door

해피니스 도어는 실시간으로 참여자들의 피드백을 수집하고 시각화 해주는 도구다. 다양한 회의, 워크숍, 이벤트에서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사후에 소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의견을 수집해보자. 그리고 그 의견을 즉석에서 반영하고 개선해보자. 훨씬 더 살아 숨쉬는 애자일한 문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쿠도 카드 | Kudo Cards

조직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매일 상호작용을 하면서 보내지만, 뜻 밖에도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주로 실수와 잘못을 지적하는 문화라면 그것이 조직 문화의 하한선을 형성하게 되지만, 주로 감사와 인정을 전해주는 문화라면 그것이 조직 문화의 상한선을 계속 높여줄 것이다.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감사하고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는 시간을 명시적으로 만들어보자.


이 밖에도 매니지먼트 3.0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실천법들이 있다. 위 버튼을 눌러서 목록을 한 번 훑어보고 그 중에서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실천법이 있다면 그냥 해보는 거다. 그냥 한 번 해보는 것, 그것이 애자일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 결과를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나눠보자. 그러면 두 번째 단계에서 무엇을 해볼 수 있을지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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