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은 멋진 것이다.

– 레프 톨스토이

평생 동안 이직을 몇 번이나 해봐야 어디가서 많이 해봤다고 할 수 있을까. 짧았던 Odd-e 생활을 마무리 짓고 커리어의 7번째 스테이지로 들어섰다. 이직을 할 때마다의 느낌은 마치 롯데월드 자이로드롭 꼭대기에서 떨어지기 직전과 비슷한 것 같다. 한동안 몰아치던 시간이 조금은 잦아들어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어느새 수직 자유낙하 0.1초 전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는거지?”

내가 대체 왜 여기에 올라왔을까하는 후회, 떨어지기 직전에 몰려드는 긴장감, 중력이 빨아들일 때의 흥분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느 누구의 강요도 없었다.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거기까지 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특별하다. 그냥 이직이 아니라 생애 첫 창업이기 때문이다.

자기, 타인 그리고 상황

이 사이트의 예전 이름은 “Self, Other and Context”였다. 원래는 2012년부터 운영하던 개인 블로그였는데, 다소 길었던 그 이름은 애자일의 할아버지 제럴드 와인버그(그리고 버지니아 사티어)가 남긴 가장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인 일치성(Congruence)에서 따온 것이다. 일치적인 태도란 매순간 자기(self), 타인(other), 상황(context)을 치우침 없이 고루 자각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여기에서 컨그루언트 애자일(Congruent Agile)이라는 회사 이름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Gerald M. Weinberg (1933-2018)

조직에서 뛰쳐나와 직업으로써 전문적인 애자일 코칭을 하다보니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되더라.

  • Self –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어떻게 하면 불안하지 않을 수준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까?”
  • Other –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들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 “내가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은 누구이고,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가?”
  • Context – “현재 대한민국에서 애자일이란 어떤 의미일까?”, “지금 내게 주어진 소명이 있다면 그게 뭘까?”

답을 간단히 얻을 수 없는 질문들이고 아마 대부분 평생 품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질문에 치우침 없이 고루 자각하고 존중하는 일치적인 애자일(Congruent Agile)이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어느 정도는 방향을 찾은 것 같다.

일치적인 애자일

2019년은 대한민국의 애자일 코치들에게 당황스러운 한 해였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 조직 내에서 매일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만 하고 내일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거의 모든 지식 산업에서 마치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 ‘애자일’을 외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를 포함해서 그 동안 애자일 코치들은 이런 상황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소프트웨어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갈 사람들에게 애자일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IT를 벗어난 그 곳은 너무나 낯선 세계이고, 조직의 테두리를 벗어난다는 선택은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빈자리에서 인접 분야의 전문가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보다 근본적이고 색다른 관점에서 애자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그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기존 애자일 실천가들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변치않는 믿음 중 하나는 “애자일 코치라면 직접 애자일 조직에서 애자일한 방식으로 일해보고 작게라도 변화를 이루어낸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주로 엔지니어 출신인 기존 애자일 실천가들을 봤을 때 지금까지 (특히 비즈니스 측면에서) 애자일을 성공적으로 확산시켜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반면, 최근에 애자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많은 인접 분야 전문가들은 애자일의 필요성과 필연성을 힘주어 말하지만, 애자일한 팀에서 일해본 경험도 애자일한 조직을 만들어본 경험도 부족하다. 나는 이 둘 사이를 조화롭게 연결시켜 볼 수는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관점에서 ‘컨그루언트 애자일’을 통해 시도해보고 싶은 세 가지 소망이 생겨났다.

첫 번째, 다양한 분야에 애자일을 적용시켜보고 싶다. 소프트웨어 개발팀이나 IT 업체가 아니어도 애자일을 적용하고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건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는 참고 사례들이 많이 부족할 뿐이다. 작년에는 제약 회사를, 올해에는 음료 회사를 코칭하면서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앞으로도 좋은 파트너들을 만나 여러 가지 시도와 실험을 통해 무엇이 가능한지 어디까지 가능할지 꾸준히 확인해보고 싶다. 언젠가는 의미있는 결과물로써 정리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두 번째, 다양한 전문가 분들과 협업을 해보고 싶다. 평생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물을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단지 더 큰 우물 안이었을 뿐이었다. 조직 밖으로 나와보니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다양한 분야에서 평생을 갈고 닦아온 분들과 만나서 교류하고, 새로운 경험을 간접적으로 얻고, 좋은 기회를 함께 만들어 볼 생각을 하면 마음이 설렌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애자일이 부서지고 더욱 단단한 애자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아는 애자일은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는 애자일 코치가 되고 싶지 않다.

세 번째, 애자일 코치들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 아직 대부분의 대한민국 애자일 코치들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직원으로 소속되어 일하는 중이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미래에 조직 바깥에서 독립 애자일 코치로서의 길을 선택하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내 경험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애자일 커뮤니티에서 받은 것들을 다시 돌려주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언제 쯤이면 할 수 있을지, 과연 내가 할 수는 있는 일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한 입장이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를 위한 새로운 일하는 방식

컨그루언트 애자일의 캐치프레이즈는 The New Way of Working for Everyone이다. 회사의 비전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일하는 방식(the new way of working)이 필요하다. 모두가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제의 일하는 방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범위가 소프트웨어 개발 뿐만이 아닌 모두(everyone)였으면 좋겠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이고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동기는 이미 충분하다.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조직의 역량, 그리고 그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더 많은 애자일 코치가 필요한 때다.

모두가 지금과는 다른 새롭고 더 좋은 방식으로 행복하게 일하며 매일 매일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그런 날을 꿈꿔본다.

2020년 5월 5일
조승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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