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애자일의 개념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특히, 비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 계신 분들께) 두 권의 책을 추천해왔습니다.

그 중 하나는 스티븐 데닝의 “애자일, 민첩하고 유연한 조직의 비밀“이고, 다른 하나는 켄트 벡의 “익스트림 프로그래밍“이지요. 제가 이렇게 두 권을 추천해 온 것은, 데닝의 책은 우리에게 애자일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여러 가지 사례로 그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좋은 책이고, 벡의 책을 통해서는 애자일을 내 업무에 날마다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원형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스티븐 데닝의 책을 대신할만한 좋은 책이 나왔습니다. 해외 이야기가 아니라 국내 사례를 풍부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습니다. 글로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더라고요. 바로 이머징 리더십 인터벤션즈의 장은지 대표님이 쓰신 “리셋하고 리드하라“입니다.

책을 입수하자마자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도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추천드리고 싶네요. 감상평을 대신해서 몇몇 인상적인 문구와 거기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적어 보겠습니다.


디지털의 발전이 가져온 빅데이터의 부상과 연결성은 우리를 더욱 복잡한 세상으로 이끌고 있다. 오늘날의 세상은 ‘복잡계(Complex system)’ 그 자체다. […] 복잡계 시스템에서 중요한 건 적시에 문제를 감지(Sensing)하고, 그것들을 바로 찔러보고(Probing), 실행에 옮기고, 실험을 통해 실패를 겪고, 실패에서 빠르게 회복해서 그 다음으로 조치를 취하는 형태로 나아가는 것이다.

– 복잡계의 시대를 살아가는 해법, p.58~69

결국, 애자일은 복잡한 환경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여기에서 ‘복잡’하다는 것은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 동안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도 그저 ‘예전 워터폴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여왔던 애자일의 개념이 경영 전문가들을 만나 시대 상황에 훨씬 더 적합하고 설득력 있는 메시지로 재탄생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영 컨설팅 회사들의 프로젝트들 중 최근에는 ‘실행’에 집중한 장기 프로젝트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 컨설턴트와 업계 출신의 자문가들이 고객과 오랜 시간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마치 회사의 외부 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 계획 수정만이 아닌 실행과 성과에 집중한 프로젝트들의 비중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 복잡계의 시대를 살아가는 해법, p.64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널리 알려진 스포티파이 모델도 스포티파이 자체 역량만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스웨덴의 유명한 애자일 코칭 그룹인 CRISP와 수년 간에 걸친 협업과 실험을 통해 탄생한 것입니다. 기존의 관성과 집단 사고는 너무나도 굳건한 것이기에, 적절한 외부 역량의 활용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기간 조직의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진지하게 바꿔보고 싶은 조직을 만나는 건 제 로망이기도 하지요.)

수직적 관료주의가 만연하는 기계적 조직에서는 혁신적 아이디어의 실행보다는 ‘절차와 설득’이 중요한 업무 역량이다. 새로운 업무를 시도하려면 협조를 받아야 하거나 이해관계가 다른 타 부서 팀장, 임원의 동의까지 구해야 하기에 조직 내에서 합의를 거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 이러한 문제를 수정하기 위해, 유기체 조직에서는 위계를 없애고 단위 조직에게 충분한 자율과 권한을 부여했다.

– 수직 위계 조직이 업무에 도움이 되는가, p76~77

그저 눈물이 앞을 가릴 뿐입니다 ㅜㅜ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네요. 앞으로도 당분간 많은 조직들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겠죠. 하지만 분명히 그 견고한 틀을 깨는 조직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리라 확신합니다. 그게 우리 조직일지 아니면 우리의 경쟁사일지의 문제일 뿐이죠.

피상적으로는 고객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 일하는 방식은 공급자 중심의 관점으로 일하거나, 고객은 둘째로 미뤄두고 나와 내 팀이 위계 조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의사 결정을 해왔을 확률이 높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고객보다는 내 상사가 조직에서 살아남도록 하는 게 더 중요했을 것이다.

–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는가, p81

애자일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목적과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조직이 OKR을 성과 관리 도구로 잘못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 OKR은 목적과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궁금하신 분들께는 OKR 전도사 존 도어의 TED 강연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많은 기업의 경영자들이, 주인 의식이 마치 정신력이나 마음가짐, 개인의 태도와 같다고 믿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산업이나 기업의 환경이 아무리 척박하더라도 개인이 태도와 마음가짐을 바꾸면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요구다.

– 무엇을 무기로 삼아 일해야 하는가, p91

제가 현장에서 실제로 조직을 코칭하거나 컨설팅을 하다보면 “우리 직원들은 그럴만한 역량이 안돼요.”, “구성원들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잘못됐어요.”라고 말하는 고위 경영진들을 의외로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많은 애자일 실천가들은, 같은 사람일지라도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도 물론 그렇고요. 저는 팔로워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데요, 그저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소위 ‘팔로워십’이란 자신의 리더십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모든 변화는 쌍방향이다. 물론 리더와 조직, 시스템의 변화가 앞서야 한다. 그리고 이에 맞추어 개개인이 프로페셔널로서 자신의 일과 성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자율성도 힘을 얻는다.

– 무엇을 무기로 삼아 일해야 하는가, p97

모든 성공적인 애자일 조직은 Top-down의 변화와 Bottom-up의 변화가 조화를 이룹니다. 저도 줄기차게 하고 다니는 말이죠.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ING소매은행은 2015년 여름 […] 상당히 파격적인 방식으로 조직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 회사는 이미 6개월 전부터 이러한 ‘빅뱅(Big bang)’ 방식의 조직 구조 혁신을 고민해왔고, 면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이다.

– 민첩한 조직이 되기 위해 무엇을 버릴 것인가, p107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오해가 퍼져있습니다. 한 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유혹은 너무나도 매력적입니다. 얼핏 보면 ING은행이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한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로 그런 걸까요? 절대로 아니죠. 이들에게 2015년 여름에 있었던 조직 개편도 장기적인 로드맵 중 한 점에 불과합니다. 조직 개편 이전과 이후에도 여러 가지 시도와 변화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당연히 그 중에는 잘 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은 ‘빅뱅식’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반복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아보일 수도 있겠네요. 애자일 에볼루션이라고 해야 할까요?

유사한 업무를 하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기존 팀제라고 하더라도, 본인의 업무와 팀의 업무를 시각화하고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프리 라이더들을 대폭 줄일 수 있다. […] 누가 무슨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터놓고 이야기하는 조직은 많지 않다. 조직도상 이름만 팀일뿐 ‘진짜 팀’으로 일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너무도 많다.

– 민첩한 조직이 되기 위해 무엇을 버릴 것인가, p113

저도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TF가 아니라 기존 조직에서 일상 업무에도 애자일을 적용할 수 있나요?’ 물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당!연!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TF가 아니라 원래 있었던 팀에 적용을 해야 훨씬 더 강력하게 변화를 드라이브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칸반과 스크럼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애자일 코치의 영역이죠. 많은 팀들을 코칭하면서 확신이 훨씬 더 강해졌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조직에서 일하는 모두가 서로를 충분히 어른으로 대해야 한다. 어른으로 대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통제나 견습의 대상이 아닌, 스스로 의사판단을 하고 그에 걸맞은 책임과 권한을 질 수 있는 독립적 주체로 대한다는 뜻이다.

– 리더와 팔로워, 서로를 어른과 전문가로 대하라, p159

저도 평소에 많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매니지먼트 3.0 워크숍 첫 모듈에서도 저는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고민은 대부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바꿀 수 있을까요?”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항상 실망하고 항상 화가 나고 항상 기대에 못미칠 겁니다. 나 자신을 먼저 바꾸고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쳐서 스스로 바뀔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앞으로 조직에서는 감성 지능이 뛰어난 리더들을 갈수록 더 선호하게 될 것이다. 일을 잘하는 역량 못지않게 사람들의 감성을 살피고 소통을 잘하는 역량이 중시된다.

– 공감력은 곧 지능이다, p187

예전에 애자일 코치들끼리 모여서 ‘조직 변화를 위해 단 하나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두고 토론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많은 분들이 ‘리더의 공감 능력’이 바뀔 수 있도록 돕고싶다는 얘기를 하시더군요. 많은 구성원들이 힘들어하고 어려움을 느끼는 지점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리더가 자신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주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지금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경험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 주변에서 들었던 사례들이 많아서 그런지 번역서보다 훨씬 몰입이 잘 되더군요. 문득, 책을 너무 애자일 코치의 관점에서만 읽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뭐 어쩔 수 없죠.

단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그래서 내일부터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하면 될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많지 않다는 점이겠죠. 물론 전체적인 구성이나 분량으로 봤을 때, 거기까지 다루지 않은 것이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한 방향을 만드는 것은 저와 같은 애자일 코치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은 더 갈고 닦아야 하기에 당장은 어렵지만, 언젠가는 많은 분들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글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좋은 책을 내주신 장은지 대표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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